기독교종합편성tv신문 박미쉘 기자 / 미국특파원 |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식당 하나를 열기 위해 4년이 걸리고, 공중화장실 하나를 설치하는 데 3년이 소요된다. 미국 내에서도 대표적인 진보 도시로 꼽히는 샌프란시스코지만, 시민들의 삶을 책임지는 행정 시스템은 오히려 ‘비효율의 극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시에는 약 82만 명의 시민이 살고 있으며, 공무원 수는 약 34,000명에 달한다. 이는 시민 24명당 공무원 1명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처럼 공무원이 많은 도시치고는 치안, 마약, 노숙자 문제 등 도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2024년 기준, 시의 오피스 공실률은 36.7%에 달하며, 애플·유니클로 등 주요 브랜드들이 도심에서 철수한 바 있다. 연간 예산은 160억 달러(약 21조 원)에 이르지만, 이 중 절반 이상이 공무원 급여 및 복지 혜택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예산 부족 규모는 8억 달러에 달하는 실정이다.
문제는 단순한 예산 문제만이 아니다. 2022년 기준으로 샌프란시스코 시 공무원의 58%가 정작 샌프란시스코에 살지 않는다. 집값과 렌트비가 비싸 외곽 지역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책 결정자들이 실제 주민의 삶과 괴리된 행정을 펼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시민 불만이 가장 심한 부서 중 하나는 ‘빌딩 퍼밋’ 부서다. 각종 건축 및 리모델링 관련 허가를 담당하는 이 부서는 복잡한 절차와 행정 지연으로 악명이 높다. 한 시민은 “이 부서 인원의 90%는 없어도 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 사례도 있다. 타코 가게 ‘Cielito Lindo’의 주인 호세 카스티요는 가게를 여는 데 4년이 걸렸으며, 중간에 전기계량기 추가 설치, 벽 재시공 등의 요구로 수천 달러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문도 열지 못한 채 임대료만 납부하던 기간이 수년이었다고 한다.
와인을 판매하던 ‘The Spanish Table’이라는 가게는, 단지 와인을 한 잔 서빙하며 치즈를 함께 제공하려 했을 뿐인데도 11단계의 허가 절차를 거쳐야 했고, 결국 컨설턴트 및 건축가 고용에만 약 1만 달러의 비용이 들었다.
이처럼 엉켜 있는 행정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는 새로운 시장을 맞이했다. 바로 다니엘 루리(Daniel Lurie). 그는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Levi’s)’를 창립한 가문의 후손이다. 그의 어머니는 리바이스 창업자의 증손녀로, 루리 본인 역시 비영리단체 운영과 지역사회 활동에 깊이 관여해온 인물이다.
다니엘 루리 시장은 취임과 함께 퍼밋 시스템 간소화를 핵심 개혁 과제로 발표했다. “사업자가 온라인으로 손쉽게 신청하고, 진행 상황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온라인 쇼핑 수준’의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그 길은 쉽지 않다. 현재 샌프란시스코의 도시 계획 관련 법규는 2,500페이지에 달하며, 수십 년간 덧붙여진 조항들로 행정은 마치 미로와 같다. 실제로 1987년에는 노에밸리 지역 24번가에 새로운 식당 개설을 금지한 조례가 통과된 바 있는데, 수십 년 후 그 조례를 철회하려 해도 시의회, 공청회, 기획부서, 최종 투표까지 모든 절차를 다시 거쳐야 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지금,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행정의 양이 아닌 ‘질’로서 도시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을지그리고 리바이스 가문의 후계자 다니엘 루리 시장이 이 오래된 도시 시스템을 청바지처럼 견고하고 실용적으로 바꿔낼 수 있을지 시민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