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종합편성tv신문 김효미 기자 | 사도 바울은 구브로 섬에서 로마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하며 첫 선교 여행의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 여행에서 바울은 예수님에 의해 부활한 나사로와, 전도 동반자였던 바나바의 흔적을 찾아갔다. 구브로 섬에서의 전도 여행은 고대 기독교의 중요한 성지로 자리 잡았으며, 오늘날에도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구브로 섬에서의 선교 시작: 살라미에서 바보까지
사도 바울은 구브로 섬의 동쪽에 위치한 살라미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선교를 시작했다. 당시 구브로 섬은 동서로 길쭉하게 뻗어 있는 섬으로, 동쪽 끝 살라미에서 서쪽 끝 바보까지 약 200km를 이동하며 복음을 전했다. 이 구간에서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섬을 가로질러 걸으며, 다양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 바보는 로마 총독부가 위치한 중요한 항구 도시로, 바울의 선교 여행에서 중요한 목적지였다.
구브로 섬은 그리스계와 튀르키예(터키)계로 나뉘어 분단된 지역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당시에도 다양한 문화와 민족이 혼재하던 지역이었다. 바울은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을 넘어서, 복음을 전하는 데 큰 열정을 보였다.

나사로의 무덤: 라나카에서 찾은 역사적 흔적
라나카는 구브로 섬에서 나사로의 무덤이 있는 중요한 도시로, 예수님에 의해 부활한 나사로가 목회하고 죽음을 맞이한 곳으로 전해진다. 예루살렘에서 부활한 후 나사로는 구브로 섬으로 건너와, 남은 생애 동안 이곳에서 전도 활동을 펼쳤다. 나사로는 라나카에서 평생 목회를 하다가 사망했고, 그를 기념하는 교회와 무덤이 자리 잡고 있다.

6세기부터 나사로의 무덤으로 알려진 이곳은 기독교의 역사적 성지로 자리매김하였으며, 특히 무덤은 교회 지하에 위치해 있어 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와 기도하는 장소로 유명하다. 나사로의 무덤은 크고 작은 석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석관에는 나사로의 일대기가 부조로 새겨져 있다. 예수님께서 그를 부활시키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는 이 무덤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영적 영감을 주는 장소로 남아 있다.

기팀의 어원: 키티온 지역에서의 성경적 유래
구브로 섬의 라나카 지역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키티온은 성경에서 '기팀'으로 불렸던 지역이다. 구약 성경 창세기와 민수기, 역대상, 그리고 이사야서에서 등장하는 '기팀'이라는 이름은 바로 이 키티온에서 유래되었다. 이 지역은 고대 도시 왕국으로, 기원전 13세기부터 4세기까지 구브로 섬의 중요한 중심지였다.
키티온은 특히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번성한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이 지역은 기독교와 유대교 사이의 깊은 연관성을 보여준다. 아프로디테 신전 등 다양한 유적이 발견된 이곳은 구브로 섬의 고대 역사를 탐구할 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적 현장으로 남아 있다. 키티온은 구브로 섬이 기독교 복음 전파의 중요한 기점이 되었던 만큼, 성경적 역사의 시작점으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바보에서 로마 총독에게 복음을 전한 사도 바울
구브로 섬의 서쪽 끝에 위치한 바보는 사도 바울이 로마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한 중요한 도시이다. 이곳에서 바울은 서기오 바울을 만나 복음을 전파했으며, 로마 총독은 바울의 전도를 듣고 회심했다. 이 만남은 바울의 전도 활동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었으며, 구브로 섬 전역에 복음을 전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서기오 바울과의 만남 후, 바울은 구브로 섬을 떠나 터키 본토로 향하게 되었다. 그는 바보 항구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로 이동하여, 1차 전도 여행의 다음 단계를 이어나갔다. 이때 바울은 로마 제국의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바보에는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다가 40에 한 대 감한 매를 맞았다고 전해지는 장소로 유명한 채찍 기념교회가 있다. 전통에 따르면, 바울은 이곳에서 로마 당국에 의해 채찍을 맞았으며, 이는 그의 선교 여정 중 여러 차례 겪었던 고난 중 하나였다. 기념교회는 바울의 헌신과 고난을 상징하며, 오늘날에도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방문해 그 정신을 기리고 있다.

바울의 채찍 기념교회는 영국 성공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매년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올린다. 이 교회는 사도 바울의 헌신적인 선교 활동을 상징하는 유적지로서, 전 세계에서 오는 기독교 순례자들에게 중요한 방문 장소로 자리잡았다.
구브로 섬의 역사적 중요성: 분단을 넘어선 자유로운 왕래
구브로 섬은 그리스계와 터키계로 나뉘어 오랜 기간 분단된 지역으로 남아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비교적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되었다.

1970년대 북사이프로스와 남사이프로스 사이에 벌어진 전쟁 이후로, 두 지역은 오랜 갈등을 겪었으나 최근에는 점차 왕래가 자유로워졌다. 구브로 섬은 전략적으로 지중해 동부에서 중요한 요충지로 자리 잡고 있었으며, 오스만 제국, 베네치아 공화국, 영국 등 여러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구브로 섬은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뿐만 아니라, 고대부터 현대까지 지중해를 둘러싼 다양한 문화와 종교의 충돌과 융합이 일어났던 장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바울과 바나바, 나사로 등의 인물들이 이 섬에서 복음을 전하며, 구브로 섬은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성지로서 깊은 의미를 지닌다.
구브로 섬을 따라간 사도 바울의 전도 여정은 그의 첫 선교 여행의 주요한 시작점이자, 기독교 복음 전파의 중요한 사건들로 가득 찬 역사적 장소였다. 오늘날 구브로 섬은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를 따라가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그리스계와 터키계의 분단의 역사를 넘어서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평화의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