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VNtv 기획특집14 신앙의 발자취를 찾아서...]"부국강병의 길, 선교로 신앙을 열다 2부 : 고종, 서구 문물 수용 위해 보빙 사절단 파견… 조선의 개화와 자강을 위한 첫걸음

고종의 개화 의지, 보빙 사절단 파견으로 구체화되다
미국 탐방에 나선 보빙 사절단, 서구 문물을 배우다
가우처 목사와의 만남, 조선 선교의 계기가 되다

 

기독교종합편성tv신문 주언 기자 | 조선이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기 위한 개화의 길을 본격적으로 모색했다. 1883년 고종은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서구의 선진 문물을 배워 조선의 부국강병을 실현하고자 보빙 사절단을 파견했다. 이 사절단은 미국 곳곳을 탐방하며 새로운 국가 모델을 찾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이 과정에서 조선 선교의 계기를 마련하는 등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했다.

 

고종의 결단, 보빙 사절단 파견 배경
조선의 개화와 자강을 위해 고종은 보빙 사절단을 미국에 파견했다. 이는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서구 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고종의 전략적 결단이었다. 당시 조선은 국제정세의 급변 속에서 자국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개화 정책을 추진해야 할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미국으로 떠난 보빙 사절단, 선진 문물 탐방 시작
보빙 사절단은 1883년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뒤 뉴욕까지 대륙횡단을 하며 미국의 다양한 산업시설, 교육기관, 군사시설 등을 견학했다. 이들은 매일 밤 서로의 견문을 토론하고 서구의 문화를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고종의 국서를 아서 대통령에게 전달하며 조선의 독립적 위상을 강화하고 개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볼티모어에서 만난 가우처 목사와의 역사적 만남
보빙 사절단은 볼티모어에서 존 가우처 목사를 만났다. 가우처는 이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해 미국의 교육제도를 소개했고, 이 만남은 이후 조선에서의 선교활동을 계획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가우처와의 만남은 조선 선교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조선의 개화와 종교적 변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보빙 사절단의 역할과 고종의 개화 의지
고종은 보빙 사절단을 단순한 외교적 답례를 넘어 조선의 개화와 자강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사절단의 활동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서구 문물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조선의 발전을 도모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가우처 목사, 조선 선교의 문을 열다
가우처 목사는 보빙 사절단과의 만남 이후 조선 선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한국교회의 기틀을 마련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조선의 개화와 함께 종교적 변화 역시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고종의 보빙 사절단 파견은 단순한 외교 활동에 그치지 않고, 서구 문물을 수용하려는 개화 정책의 본격적인 출발점이었다. 조선의 독립을 지키고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한 고종의 노력은 이후 조선의 근대화와 국제적 위상 확립의 기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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