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종합편성tv신문 특집기획, 대한민국의 역사 100년된 교회를 찾아서 2회]한국 초기 교회의 산실, 남대문교회 100년 역사를 말하다

개신교의 뿌리, 남대문교회가 품은 100년 이야기
초기 선교사의 발자취를 따라 한국 교회의 시작을 이끌다
한국 민족운동과 함께한 남대문교회의 신앙과 헌신
제중원에서 남대문교회로 이어진 개신교의 뿌리와 전통

 

 

기독교종합편성tv신문 류승우 기자 |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100년을 이어온 남대문교회는 한국 개신교의 뿌리와 같은 곳으로, 한국 교회의 초기 역사를 간직한 상징적 공간이다. 제중원에서 시작된 이 교회는 선교사들의 헌신과 함께 민족 운동의 중심지로 성장해 왔다.


한국 최초의 개신교 교회 중 하나로 자리 잡다
1885년 조선의 첫 정주 선교사로서 알렌이 서울에 발을 디딘 이후, 남대문교회는 한국에서 개신교 선교의 기틀을 다진 초기 교회로서 출발했다. 초기 선교사 알렌과 헤론,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이 함께 예배를 드리며 신앙 공동체를 세운 이곳은 제중원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알렌은 제중원에서 서양식 의료 활동을 시작하며 신앙을 전파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고, 이후 남대문교회는 자연스럽게 한국 개신교의 중심지로 성장해 갔다.

 

‘민족 운동과 신앙의 중심지로서의 남대문교회
남대문교회는 단순히 신앙의 전파에 그치지 않고, 한국 민족 운동과 독립운동의 중심으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3.1운동 당시 이 교회의 이갑성 집사를 비롯한 여러 지도자들이 독립운동의 선두에 서며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헌신했다. 또한 6.25 전쟁 이후에는 남하한 성도들이 남대문교회를 약속의 장소로 삼아 신앙을 지키고 다시금 힘을 얻는 장소로 기능했다. 남대문교회는 그야말로 한국 개신교와 민족의 역사적 발자취가 응축된 공간이다.

 

조명과 함께 드러난 남대문교회의 역사와 전통
남대문교회는 1885년 알렌 선교사와 헤론, 스크랜턴 선교사 등이 조선을 향한 선교사명을 실천하며 한국 개신교의 뿌리를 내린 상징적인 장소다. 산업화 이후 고층 빌딩 사이에 묻혀 있던 남대문교회가 조명을 통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남대문교회 손윤탁 목사는 이번 점등식에서 “산업화 이후 빌딩 속 섬처럼 자리한 교회가 이제 밤의 경관을 밝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남대문교회의 시초, 제중원에서 시작된 신앙 공동체
남대문교회의 역사는 1885년 서울에 설립된 제중원에서 시작되었다. 제중원은 알렌 선교사가 고종의 승인을 받아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으로 개설했으며, 당시 조선에서 선교 활동이 제한된 상황에서 신앙 공동체의 역할을 수행했다. 알렌과 헤론,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 여러 선교사들은 제중원에서 예배를 드리고 성찬식과 세례를 행하며 한국 개신교의 기초를 다졌다.

 

 

초기 한국 교회사의 중요한 장면을 기록한 남대문교회
남대문교회는 한국 최초의 성찬식과 세례식을 거행한 곳으로, 알렌을 비롯한 초기 선교사들이 한국인 신자와 함께 신앙 공동체를 형성했던 장소다. 이 교회는 단지 종교적 역할을 넘어, 민족 독립운동의 중요한 거점으로 기능하며, 특히 3.1운동의 주요 인사들과 해방 후 대한민국의 주요 지도자들이 출석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50만 성도 복음화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남대문교회는 민족복음화와 교육, 복지 활동에도 큰 기여를 해왔다.

 

 

민족과 신앙의 중심지로서의 역할
남대문교회는 서울 중심에서 한국 개신교의 성장과 함께 민족의 신앙적 집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6.25 전쟁 시기에는 북에서 내려온 성도들이 남대문교회를 약속의 장소로 삼으며 신앙과 만남의 장소로 기능했다. 이후 남대문교회는 ‘교회-병원-학교’라는 삼각 선교 전략을 실천하면서, 세브란스 병원과 연희전문학교와의 연계로 의료 및 교육 선교를 확대해 나갔다.

 

남대문교회와 한국 개신교의 성장
남대문교회의 역사는 단순히 신앙의 공간에 머물지 않았다. 초기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인 서상륜, 김익두, 함태영 등이 이곳에서 활동했으며, 박서양, 김필순 등 세브란스 의학교 출신 의사들이 교회에서 신앙적 성장을 이루어냈다. 또한 3.1 운동의 민족 지도자와 해방 후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도 남대문교회의 예배에 참석하며, 신앙과 민족적 정체성을 결합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의료 선교의 중요 거점으로서 제중원의 역할
남대문교회의 뿌리인 제중원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자, 선교사의 공식적인 선교활동이 제한된 상황에서 중요한 신앙 공동체였다. 이곳에서의 의료 활동은 선교사들이 조선에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한 매개체 역할을 했으며, 이를 통해 선교사들이 한국의 병자와 소외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남대문교회는 이러한 신앙 공동체의 연장선에서 한국인의 신앙을 깊이 있게 담아낸 장소로 자리 잡았다.

남대문교회는 100년 역사를 넘어 한국 교회사에서의 위상을 다시금 드러내며,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