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종합편성tv신문 특집기획 - 성지야 놀자 7탄, 사도바울의 1차 전도여행, 버가와 앗달리아의 역사와 유적지

버가의 유적과 사도 바울의 전도 여정
앗달리아의 역사적 중요성과 하드리안 게이트
비잔틴 교회의 흔적과 현대 안탈리아의 모습

 

기독교종합편성tv신문 류승우 기자 | 사도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은 구브로 섬을 떠난 뒤 밤빌리아의 버가로 향하는 여정으로 이어졌다. 버가에서 복음을 전한 후, 그는 앗달리아를 통해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갔다. 오늘날 앗달리아는 안탈리아로 알려져 있으며, 고대의 발자취는 비잔틴 교회의 흔적, 거대한 전차 경기장, 그리고 웅장한 로마 시대의 유적을 통해 여전히 남아 있다.

 

 

버가로 향한 사도 바울의 첫 여정
사도 바울은 구브로 섬을 지나 밤빌리아의 버가로 도착했다. 당시 학자들은 바울이 상선을 타고 앗달리아 항구를 거쳐 버가로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버가는 밤빌리아 지역의 중심지로, 로마 시대의 성벽과 대형 경기장을 자랑하며, 당시 큰 도시의 면모를 보여준다.

 

버가의 유적과 사도 바울의 전도 여정
버가는 밤빌리아의 중심지로, 사도 바울이 구브로 섬에서 항해해 도착한 곳이다. 버가의 웅장한 전차 경기장과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은 로마 시대의 번영을 증명한다. 사도행전 기록에 따르면, 바울은 비시디아에서 버가를 거쳐 앗달리아로 이동하며 말씀을 전했다.

 

앗달리아 – 역사적 항구와 교역로의 중심
앗달리아는 현재의 안탈리아로, 지중해를 낀 튀르키예의 남부를 대표하는 도시이다. 이곳은 기원전 150년경 버가모 왕국의 아탈로스 2세가 통상을 목적으로 창건했다. 당시 앗달리아는 버가의 외항 역할을 하며 에베소와 서머나로 향하는 교역로의 중요한 지점으로 발전했다.

 

아름다운 항구와 현대 안탈리아(과거의 지명 앗달리아)의 매력
안탈리아(과거의 지명 앗달리아)는 과거의 역사적 유산을 보존하며 지중해 산맥과 토로스 산맥에 둘러싸여 따뜻한 기후를 유지한다. 기원전 260년경 작은 항구였던 이곳은 오늘날 튀르키예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발전했다.

 

버가의 역사적 상징 – 전차 경기장과 극장
버가에는 약 2만 5천여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전차 경기장이 있다. 이는 당시 버가의 규모와 활기를 증명하는 유적이다. 또한, 수천 명이 모일 수 있는 극장 역시 고대 로마의 웅장함을 드러낸다. 사도행전 14장 24-25절에 따르면, 바울은 1차 전도 여행을 마치며 비시디아를 지나 버가에 이르러 말씀을 전하고 앗달리아로 이동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앗달리아 – 과거와 현재의 교차점
오늘날 안탈리아로 알려진 앗달리아는 바울이 수리아 안디옥으로 귀환할 때 배를 타고 떠난 마지막 도시였다. 로마 황제 하드리안이 방문을 기념해 세운 ‘하드리안 게이트’는 당시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현대의 안탈리아는 터키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고대와 현대가 어우러진 관광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비잔틴 교회의 흔적과 전환
앗달리아에는 비잔틴 시대의 교회가 남아 있었으며, 오늘날 이곳은 모스크로 사용되고 있다. 웅장한 건축양식과 교회의 역사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현대에는 기도 방향이 바뀌고 지붕이 덮여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유적은 여전히 교회의 본래 모습을 일부 보여주며, 그 시대의 신앙과 열정을 되새기게 한다.

 

현대 앗달리아 – 과거를 간직한 관광도시
앗달리아는 지중해 연안의 온화한 기후 덕분에 겨울철에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로마 시대부터 이어져온 해상 교통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던 지역답게, 사도 바울이 해로를 선택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유적지 탐방 외에도 현대적 즐길 거리가 풍부한 이곳은 오늘날에도 그 역사적 중요성을 잃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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