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종합편성tv신문 류승우 기자 | 할아버지와 어린 손자가 당나귀와 함께 길을 가고 있었다. 한 마을을 통과할 때 할아버지는 당나귀를 앞에서 끌고 어린 손자는 당나귀 뒤에서 걷고 있었다.
그때 마을 사람들은 비웃으며 말했다.
“왜 당나귀를 타지 않고 끌고 가지?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네.”
이 마을 사람들은 실용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었다. 그 말을 듣고 할아버지는 당나귀의 등에 올라탔다.
그들이 두 번째 마을로 왔을 때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향해 매정한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자신은 당나귀를 타면서 어린 손자는 그냥 걷게 하는 것은 매정한 짓이라고 했다. 이 마을은 인도주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마을 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서 당나귀에서 내렸다. 그리고 대신에 어린 손자를 당나귀 등에 태우고 계속 길을 갔다.
세 번째 마을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노인을 걷게 하고 자기만 당나귀를 탄다고 그 어린 소년에 대해 마구 욕을 했다.
”요새 아이들 못됐다. 어른도 몰라보고 참 버릇이 없다.”
이 마을은 노인들이 많이 사는 마을 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마을의 촌장을 찾아가서 그간의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마을 촌장이 제안을 했다.
“그러면 둘 다 함께 당나귀를 타는 것이 좋겠는데요”
그 제안이 합리적인 것 같았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함께 당나귀를 타고 길을 출발했다. 네 번째 마을에 들어섰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다 그들을 못된 사람처럼 쳐다보았다. 그 이유는 당나귀를 둘이나 타면서 너무 동물을 학대한다는 것이었다. 이 마을은 동물 애호가들이 사는 마을이었다. 비난을 받던 노인은 그 동안의 비난에 너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결국 당나귀에서 내려 힘없이 가다가 네 번째 마을을 통과했다,
다섯째 마을에 들어서기 직전에 할아버지와 손자는 당나귀를 어깨에 졌다.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렇게 살려고 하면 인생이 짐이 아주 무거워집니다. 사람들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좋은 충고를 해줄 수 있습니다.
그 충고 중의 많은 충고가 아주 유용한 충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충고와 의견을 다 만족시키려고 하면 결국 혼동과 좌절에 빠질 수 있습니다.
바른 선택을 하기까지는 귀를 기울여야 하겠지만 일단 방향을 결정했다면 그 방향을 향해 매진하여야 합니다.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삶의 좌표는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를 부르신 소명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향하여, “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에 올라가 느보 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보라고 한 그 젖과 꿀이 흐르는 땅만 바라보며 달려 왔습니다. 이제 자신은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자신의 후손들은 그곳에 들어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바라보는 눈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