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종합편성tv신문 특집기획, 대한민국의 역사 100년된 교회를 찾아서 4회] 108년 역사의 예산교회, 다시 불 밝히다

일제강점기와 현대의 인구 감소 속에서 두 차례 문을 닫았던 예산교회의 역사
북한 이탈 주민 지원, 문화 공간 운영 등 지역사회와 공존하는 예산교회의 역할
생존이 아닌 공존을 고민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작은 교회의 움직임

기독교종합편성tv신문 류승우 기자 | 한 세기 넘는 역사를 간직한 충남 예산군 대한성공회 예산교회가 다시 살아났다. 일제강점기 탄압 속에 문을 닫고, 해방 후 복원됐지만 인구 감소와 교인 이탈로 또다시 쇠락했던 이 교회가, 지역사회의 변화와 신자들의 노력으로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 한국교회의 위기 속에서도 ‘작은 교회’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예산교회의 여정을 조명한다.

 

일제 탄압, 문을 닫은 교회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일제는 조선 내 외국인 선교사들을 추방했다. ‘외국인의 입국, 체재 및 퇴거에 관한 건’(1939년)을 근거로 대한성공회도 타격을 입었고, 영국국교회의 영향을 받은 예산교회 역시 문을 닫아야 했다. 선교사들이 떠나며 교회는 폐쇄됐고, 운영하던 신명유치원마저 몰수됐다.

 

예산교회는 1917년 김만준 전도사가 세운 작은 예배당에서 시작해, 점차 교세를 확장하며 예산 최초의 유치원을 운영하는 등 지역사회의 중심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은 교회의 성장을 가로막았고, 교회는 긴 침묵에 들어갔다.

 

다시 열린 교회, 그러나 또다시 쇠락
예산교회는 해방 후에도 오랫동안 방치됐다. 1968년 대한성공회가 사제를 파송하며 재건이 시작됐고, 1976년에는 신명유치원 부지에 신식 벽돌 건물을 지었다. 운영권을 되찾고 교회를 복원하며 다시금 활기를 띠는 듯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예산 지역 전체가 쇠퇴했다. 한때 20만에 육박하던 주민 수는 10만 명 이하로 줄었고, 교인도 급감했다. 예배당의 불이 꺼지는 날이 많아졌고, 2017년 대한성공회 대전교구는 교회를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교회는 다시 문을 닫았다.

 

2018년, 신학생 몇 명이 뜻을 모아 예산교회 재건을 위한 ‘Again 1917, 일어나요 예산교회’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원생 심규용 전도사가 중심이 되어, 대전교구에 교회 폐쇄 결정을 유보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교구는 뜻밖에도 이를 승인했다.

 

2019년 2월, 심 전도사가 예산교회 전도사로 부임하면서 교회는 다시 문을 열었다. 같은 해 2월 16일, 예산교회는 첫 예배를 드리며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예산교회의 대림절, 변화의 중심에 서다

2024년 12월 1일, 대림절 첫째 주일. 예산교회는 변화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허름했던 성당 내부는 깔끔하게 정돈되었고, 새로 단장한 제단과 장의자, 그리고 책방으로 바뀐 사제관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특히, 유치원 건물은 식당 겸 모임 공간으로 리모델링돼 교인들의 교제 공간이자 지역 사회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됐다. 매주 20~30명의 신자들이 예배에 참석하며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었다.

 

교회, 지역사회와 함께 숨 쉬다
예산교회는 단순한 종교 공간이 아니다. 지역과의 공존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 북한 이탈 주민 50가정이 정착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예산군 도시재생센터와 미국 성공회의 지원을 받아 주방 설비를 갖췄고, 주민들이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교회의 역할, 지역과 공동 운명체
예산교회는 지역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 예산군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조곡 산업단지 문제에도 지역 주민들과 함께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 산업단지는 사실상 대규모 폐기물 처리장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충청남도는 2016년 이후 전국에서 가장 많은 대기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지역으로 조사됐으며, 교회는 이에 대한 경각심을 지역사회에 환기하고 있다.

 

교회의 소멸, 그러나 빛을 잃지 않는 신앙
한국교회의 위기가 거론되는 시대, 예산교회의 사례는 다른 의미를 던진다. 심 신부는 “교회도 지역처럼 소멸할 수 있다. 이를 인정하고, 생존이 아닌 공존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도보다 중요한 것은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회가 빛을 잃으면, 사람들이 찾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의 삶이 온전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리스도를 알게 될 것이다.”

 

예산교회는 낡아 가지만 여전히 빛을 내고 있다. 지역과 함께, 신앙의 본질을 지켜가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이 작은 교회의 움직임이, 한국교회의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