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종합편성tv신문 김효미 기자 |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리스도 그룹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소속감을 찾도록 권면했다. 로마 교회의 성도들이 사회적 지위와 성별, 인종을 초월해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가야 함을 강조했으며, 이는 오늘날 교회가 새로운 가족 공동체로서 소속감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공간과 예전을 통한 그리스도인의 삶 초기 로마 교회의 예배는 작고 단순한 공간에서 이루어졌으며, 공동식사를 통해 서로를 수용하고 사랑을 실천했다. 이러한 예전은 교회의 본질을 담아낼 수 있는 중요한 방식으로, 오늘날 교회도 새로운 상상력으로 하나님 나라의 서사를 담아낼 수 있는 공간과 예전을 찾아야 한다는 권고가 이어졌다. 저항과 선행 사이의 균형을 찾는 성도들 바울은 성도들이 핍박 속에서도 사회에 공헌하는 매력적인 집단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로마 교회는 제국의 가치에 맹목적으로 순응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와 담을 쌓지 않는 이중적 정체성을 지닌 공동체여야 했다. 이러한 정체성은 오늘날 한국 교회에도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기독교종합편성tv신문 김효미 기자 |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묘사하며, 이 땅의 나라와는 차별화된 새로운 왕국의 시민으로서 그들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세속적인 정치 집단과 구별되며, 사랑과 성령을 통해 성숙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새로운 왕국의 시민으로서의 교회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지역과 민족을 초월한 새로운 나라의 시민으로 정의했다. 에베소 교회는 단순한 종교 집단이 아닌, 그리스도를 왕과 주로 모시는 새로운 공동체로 설명됐다. 그는 “이 땅의 나라에 속한 사람들과 분명히 달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들이 하나님 백성의 총합으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지닌다고 밝혔다. 사회적·정치적 용어를 통한 에클레시아 묘사 바울이 사용한 '에클레시아'는 당시 에베소에서 정치적·법적 민회라는 의미를 지녔다. 바울은 이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자들의 집합체로 사용했다. 이는 로마 제국에서 황제와 국가의 관계를 머리와 몸으로 비유한 당시의 관습을 차용한 것으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교회를 그의 몸으로 비유하며 에베소 교회를 묘사했다. 차별성을 가진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윤리 바울은
기독교종합편성tv신문 김효미 기자 |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을 전파하고, 그들이 단순한 신자가 아닌 하나님의 동역자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의 메시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새로운 정체성과 사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복음 사역 이후 성령의 은혜를 받아 동역자로 변화를 겪어야 한다는 강력한 도전을 받았다. 고린도에서의 바울의 첫 사역 고린도에서 바울의 복음 전파는 사도행전 18장에서 묘사된다. 그는 회당에서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임을 전하다가 쫓겨났으나, 인근 디도 유스도의 집에서 전도 활동을 계속했다. 결과적으로, 회당장 그리스보와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았다. 바울의 고린도 첫 사역은 약 49년 봄에서 52년 봄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바울의 편지와 고린도 교회의 성장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떠난 후 성장했으나, 그 과정에서 문제도 발생했다. 바울은 55년 봄 에베소에서 고린도전서를 써 보냈고, 그 후 마게도냐에 도착해 고린도후서를 써 보냈다. 그의 편지들은 고린도 교회를 향한 깊은 관심을 보여주며, 교회가 단순한 신앙 공동체에서 더 큰 사명을 지닌 일꾼으
기독교종합편성tv신문 김효미 기자 | 초기 기독교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됐지만, 그 중심은 곧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땅끝까지 이동했다. 조재천 전주대 교수는 예루살렘이 교회의 탄생지이자 상징적 중요성을 가졌지만, 항구적인 교회의 터전은 될 수 없었던 신학적 이유를 분석했다. 항구적 교회의 터전이 아닌 상징적 출발지_예루살렘 교회의 탄생과 확장 조재천 교수는 "예루살렘 교회의 기원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의존하고 있다"며 발표를 시작했다. 예수의 마지막 행적이 있었던 예루살렘은 제2성전기 유대교 신앙의 상징적 장소였으며, 초기 기독교 역시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성령 강림 후 3천 명이 회심하는 사건을 계기로 교회는 확장되기 시작했다. 예루살렘에서의 교회의 중심 이동 조 교수는 예루살렘이 영구적인 교회의 터전이 될 수 없었던 이유를 제시했다. 사도행전 내러티브에서 교회의 중심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로, 그리고 땅끝까지 확장된다. 특히, A.D. 70년 성전 파괴는 예루살렘이 더 이상 교회의 중심이 될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 사건을 '메시아를 살해한 유대인들에 대한 하
기독교종합편성tv신문 주기범 기자 |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이 개교 127주년을 맞아 해외 기독교 유물 특별전시회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회는 미국의 인스파이어드 전시회와 협업하여, 성서의 기록과 전파 과정, 그리고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흐름을 조망하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성서의 역사적 배경을 보여주는 1부 전시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은 10월 10일부터 12월 30일까지 '영감 Inspiration, 흔적 Traces, 숭실 Soongsil' 전시회를 통해 성서의 기원과 역사적 배경을 소개한다. 특히, 이번 전시회는 고대 성서 유물인 ‘대이사야서 두루마리’와 ‘파피루스 52’ 등 중요한 성서 사본을 선보이며, 관람객들에게 성서의 깊은 역사적 의미를 전달할 예정이다. 루터와 종교개혁의 흔적, 2부 전시 2부 전시에서는 마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과 독일어로 번역된 신약 성경 원본 등 종교개혁과 관련된 유물이 공개된다. 종교개혁의 중요한 순간들을 담은 이 유물들은 루터의 사상과 종교개혁이 성서 전파에 미친 영향을 강조하며, 면벌부 논쟁을 비롯한 당시의 종교적 이슈들을 생생하게 조명한다. 한국 기독교와 숭실대의 역사, 3부 전시 3부 전시는
기독교종합편성tv신문 김효미 기자 | 사도 바울은 구브로 섬에서 로마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하며 첫 선교 여행의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 여행에서 바울은 예수님에 의해 부활한 나사로와, 전도 동반자였던 바나바의 흔적을 찾아갔다. 구브로 섬에서의 전도 여행은 고대 기독교의 중요한 성지로 자리 잡았으며, 오늘날에도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구브로 섬에서의 선교 시작: 살라미에서 바보까지 사도 바울은 구브로 섬의 동쪽에 위치한 살라미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선교를 시작했다. 당시 구브로 섬은 동서로 길쭉하게 뻗어 있는 섬으로, 동쪽 끝 살라미에서 서쪽 끝 바보까지 약 200km를 이동하며 복음을 전했다. 이 구간에서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섬을 가로질러 걸으며, 다양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 바보는 로마 총독부가 위치한 중요한 항구 도시로, 바울의 선교 여행에서 중요한 목적지였다. 구브로 섬은 그리스계와 튀르키예(터키)계로 나뉘어 분단된 지역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당시에도 다양한 문화와 민족이 혼재하던 지역이었다. 바울은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을 넘어서, 복음을 전하는 데 큰 열정을 보였다. 나사로의 무덤: 라나카에서 찾은 역사적 흔적 라나카는
기독교종합편성tv신문 김효미 기자 | 사도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로 추정되는 더베를 향한 여정이 이어지고 있다. 터키 카라만(Karaman) 지역 일대에서 발견된 유적들은 오늘날 더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으며, 이곳에서 기독교의 초기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의 복음 전파 여정을 따라가며 역사적 감동을 재현하는 여정이 성지순례자들을 매료시킨다. 사도 바울의 1차 전도여행, 더베를 향하다 사도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의 종착지였던 더베로 추정되는 터키 남부의 카라만 지역이 성지순례자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바울이 걸었던 로마 시대의 길을 따라, 고대 도시 더베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 시작됐다. 현대에 들어서 더베로 가는 길은 새롭게 조성된 고속도로로 변모했지만, 순례자들은 여전히 옛 로마의 고대 길의 자취를 찾아보고 있다. 더베의 잔재, 카라만 박물관에서 확인하다 카라만 박물관에 보관된 유물들은 더베의 위치를 밝혀내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특히 더베의 주교였던 미카엘의 비석은 이 지역이 더베였음을 강하게 시사하는 증거로 평가받는다. 이 비석은 기원후 4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더베가
기독교종합편성tv신문 김효미 기자 | 사도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이 시작된 터키의 안디옥(수리아 안디옥)은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장소로 평가받고 있다.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받는 가운데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받은 곳이며, 바울과 바나바를 첫 해외 선교사로 파송한 교회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1년 전 대지진으로 인해 이 지역은 큰 피해를 입었고, 지금은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이다. 사도 바울의 첫 전도 여행 출발지 '안디옥'의 역사적 중요성 안디옥은 로마 제국 시절 수리아 지역의 수도로, 초기 기독교의 부흥을 이끈 중요한 장소였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 예루살렘에서 핍박을 피해 온 기독교인들이 이곳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바울과 바나바가 첫 해외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이는 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이곳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고대 유대교와 기독교가 공존하던 '안디옥'의 흔적 안디옥은 유대인 공동체가 기독교 공동체와 함께 번성한 도시였다. 이 도시는 오론테스강을 따라 번영했으며, 유대인 지구와 기독교 지구가 공존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핍박을 피해 동굴에서 예배를 드렸으며, 이 동굴 교회는 오늘날까지 남아
기독교종합편성tv신문 김효미 기자 | 마스터스 세미너리는 지난 8월 31일 서울 은평구에서 제13차 오픈강좌를 열어 종교개혁을 이끈 주요 인물인 마르틴 루터, 울리히 츠빙글리, 존 칼빈의 사상과 업적을 조명했다. 강의는 책임연구원 최더함 박사가 맡아, 16세기 종교개혁의 배경과 그 후계자들의 사상적 흐름까지 상세히 다루었다. 루터: 이신칭의로 새로운 기독교를 열다 1517년, 마르틴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통해 로마가톨릭의 구원론에 맞서면서 종교개혁의 시작을 알렸다. 최더함 박사는 루터가 십자가 신학과 ‘감추인 하나님’을 강조하고,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통해 새로운 기독교의 탄생을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루터가 주창한 이신칭의(以信稱義)는 당대 구원론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며, 종교개혁의 큰 물결을 형성했다. 츠빙글리: 부패한 교회와 맞서 싸운 개혁가 울리히 츠빙글리는 자신의 ‘67개 신조’를 통해 당시 로마가톨릭의 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용병 제도를 반대하며 성경에 기초한 개혁을 추진한 츠빙글리는 시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교회 개혁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결국 로마가톨릭 연합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했으며, 고해성사를 거부하고 참
기독교종합편성tv신문 김효미 기자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 중 하나였던 버가모 교회를 찾아가며, 오늘날 튀르키예의 베르가마를 방문한다. 버가모는 당시 학문과 의학이 발달한 도시였지만, 그 안에서 믿음을 지킨 버가모 교회는 주님께 책망받았다. 세상 지식에 매몰되지 말라는 교훈이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버가모 유적지로 향하다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일곱 교회 중 세 번째 방문지는 버가모(Pergamum)이다. 현재 튀르키예의 베르가마(Bergama)로 불리는 이 도시는 당시 학문과 의학이 발달했던 중심지였다. 사도 요한은 이곳의 교회에 주님으로부터 편지를 전하며 책망과 교훈을 전달했다. 필자는 새벽 일찍 이즈미르 기차역 근처 숙소를 떠나 시외버스 터미널인 오토갈로 이동했다. 버스를 타고 2시간을 달려 버가모에 도착하니 유적지는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화려한 학문과 의학의 중심, 그러나 책망받은 교회 버가모는 당시 학문과 의학이 발달한 도시로, 특히 의료의 신 아스클레피우스(Asklepius)를 모신 아스클레피온(Asklepieon) 병원 유적이 남아있다. 이 병원터에는 뱀이 새겨진 기둥이 서있는데, 이는 뱀이 껍질을 벗듯 질병에서 벗어나 회복되는 과정